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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눈으로 바라본 평생교육 <시선>

평생학습의 마을만들기,
칸막이를 극복하고 읍면에서 만나야 한다

  • 구자인 소장
  •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협동조합
풀뿌리 주민자치운동은 1991년 지방자치의 부활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역사회의 주인공으로 주민이 등장하고, 지방의원을 스스로의 투표로 선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이제 30년이 흘렀다. 거슬러 올라가 1961년 군사쿠데타로 지방자치가 중단된 것으로 보자면 60년이 흘렀다. 이제는 주민 손으로 읍면장과 지방의원을 선출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기억조차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선거 부작용을 지적하며 지방자치 무용론을 주장하는 소리도 있고, 한쪽에서는 주민자치 법제화 전국네트워크(2021.5.31, 대전)를 발족시켜 더 많은 권한을 요구한다.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읍면사무소(행정복지센터) 2층 강당에 올라가보시라. 읍면장 사진들이 영정처럼 액자로 걸려 있는데 그 중에서 두 명은 주민 손으로 직접 선출한 단체장이다. 1956년과 1960년에 선출된 읍면장이 그러하다. 그리고는 1961년 군사쿠데타로 30년간 지방자치는 중단되고 중앙에서 임명하는 관선 단체장이 시군 단위로 배치되었다. 하지만 1987년의 민주화운동 성과로 1988년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될 때 읍면동이 아니라 시군구가 기초 지방자치단체로 부활되었다. 지방의원은 1991년에 단체장은 1995년에 이루어졌다. 그 때 이후로 우리는 서구나 일본에 비해 지나치게 넓고 큰 자치단체 속에 살게 된 셈이다.

이 점이 평생학습이나 마을만들기 측면에서 왜 중요할까? 몇 가지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주민자치운동 30년의 역사적 경험을 돌아볼 때 마을이 더 살기 좋아지고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우리들의 실천 노력이 결코 작지 않았음에도 정책 칸막이는 극복하지 못하고, 민간단체 사이의 분열은 더 심해지고 있다. 정부 예산이 적게 투자되는 것도 아닌데 주민 입장에서는 투자 대비 효과가 너무 적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농촌 공동체의 붕괴 속도는 너무 빠르고 수도권 집중 현상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어디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고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평생학습의 마을만들기, 과연 프로그램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마을 주민 스스로 평생학습운동의 전면에 나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을은 주민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생활세계다. 국가와 시장이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될 자치공간이다. 지방자치의 진전과 더불어 다시 주목하게 된 발견이다. 그런데 마을을 방문하고 주민들을 만나보면 누구나 꿈을 꾸고 더 좋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확인한다. 이러한 꿈과 희망이 국가 정책이나 제도 앞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 시키는 반대로만 하면 된다.’, ‘뭉치면 망한다.’, ‘풍년 드니 더 걱정이다.’, ‘행정 사업 때문에 마을 갈등만 심해졌다.’, 이런 소리가 왜 계속 나오는 걸까?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공동체 활동 자체를 꺼려하는 주민들도 많다.

국민경제가 발전하면서 국가의 시혜적 정책도 계속 늘고 있지만 그렇다고 주민들이 만족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농민수당, 공익형직불제, 바우쳐 등 새로운 제도가 계속 늘고 있다. 하지만 정책과 현장 사이에 결코 건널 수 없는 큰 간극이 존재함을 느낀다. 정책의 빈 영역이 항상 드러나고 세련되지 못함에 불만이 커진다. 유권자 주민의 뜻이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고 제도 정비는 너무 느리다. 결국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설계에서 읍면이 기초자치단체 단위가 아니라는 결함이 크게 느껴진다. 선거 때만 작동하는 투표민주주의에 그치고, 직접민주주의와 주민주권이 실현되기에는 시군구 행정은 너무 멀리 있다. 이 점이 강력하게 제기하고 싶은 근본 과제에 해당한다.

우리가 정책과 현장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읍면 단위로 자치권한이 이관되어야 하고, 특히 주민자치회를 주민들의 대표기구로 법적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또 다양한 정책들이 읍면 단위에서 서로 결합하고, 중간지원조직들도 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협력해야 한다. 평생학습도 자원봉사도 지역복지도 칸막이를 극복하고 마을 현장에서 만나야 한다. 사무실을 지키는 중간지원조직으로는 스스로의 존립 목적도 사회적 가치도 실현할 수 없다. 문제 해결도 되지 않고 일하는 보람도 쉽게 찾기 어렵다.

우리는 마을 발전의 출발점이 평생학습에 있다고 자주 주장해왔다. ‘물고기 잡는 법’을 배워야 하고, ‘공부하는 마을’, ‘책 읽는 마을’이 되어야 희망이 있다고 강조한다. ‘가난은 임금님도 구제 못한다’라고 스스로 문제 해결의 힘을 키우고 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질문을 던진다. 그럼에도 ‘공짜’ 강좌나 선진지 견학, 행정 보조사업에 익숙한 현실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지방정치의 후진성과 맞물려 ‘줄서기’가 훨씬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공공성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지도자가 존중받는 풍토가 아니다. 어느 지점에서 어떤 계기를 활용해야 악순환을 극복하고 새로운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일만 하면 소가 되고, 공부한 하면 도깨비가 된다’. 마을에서 일상적으로 공부하고 토론하며 합의하는 문화적 전통이 필요하다.
(위 사진은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협동조합이 지원하여 2019년 12월에 진행된 ‘장곡면 2030’ 교육문화분과 토론회 장면)
학습(學習)이란 한자 그대로 배우고 익힌다는 뜻이고 항상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마을로 나와 보면 모두가 선생님이고 지역 전체가 학교다. 학습이란 활동은 학교나 강의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학습은 일상의 모든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좋은 것도 배우고, 나쁜 것도 배운다. 하지만 다양한 상호작용 속에서 수정되고 견제되며 균형을 유지한다. 지역사회가 공동체로 작동될 때에는 그렇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떠날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라면 평생학습은 프로그램으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하고 있는 활동들을 되돌아보자. 마을공동체, 평생학습, 사회적경제, 자원봉사, 지속가능발전 등은 1990년대 이후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며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해왔다. 하지만 법이 제정되고, 정부 정책으로 수렴되면서 ‘정책 칸막이’에 갇혀 상호협력하는 관계들이 단절되어 왔다. 시설에 갇히고 프로그램을 남발하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바라본다. 행정 사업을 전달하는 일에 집중하고 주민보다 행정 눈치를 더 많이 본다. 모두가 크게 반성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할 시점이다.

이제는 지역마다 강력한 학습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누군가가 제공해주는 프로그램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학습조직을 만들고 지역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실용적인 기획이 필요하고, 현장 실정에 맞게끔 끈질기게 밀착하여 움직여야 한다. ‘보충성의 원리’에 따라 현장 가까이에서 먼저 필요를 채울 수 있어야 한다. 작은 학습조직도 많아야 하고, 읍면 단위 주민자치회가 주도하는 학습과 토론의 공론장도 일상적으로 열려야 한다. 정책 영역의 칸막이를 극복하고 행정도 민간도 읍면에서 만나야 한다. 그래야 정책과 현장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다.
강력한 학습운동이 필요하고, 정책은 현장에서 수립되어야 실효성이 높다. 행정과 전문가가 주도하면 주민은 대상이 되고 만다.
(위 사진은 마을학회 일소공도가 매년 2회, 1박2일로 진행하는 강학회 일환으로 2018년 7월에 진행한 ‘우리 손으로 만드는 농촌마을정책’ 워크숍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