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인물-이야기가 있는 만남 <맛남살롱>

당당한 나를 걷는다.

  • 시니어모델 학습자 박옥희
난생 처음 레드카펫을 밟았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코어근육에 모든 힘을 잡아 ‘포즈’와 ‘워킹’을 반복한다. 오늘은 무대에 올라 내가 제일 잘난 듯, 도도하게 포즈를 취해본다. ‘생거진천 평생학습축제’ 오프닝으로 시니어모델 패션쇼를 하는 것이다.

지난 10월 7일 백곡천 둔치 평생학습축제 무대에서 시니어모델 16명이 열정의 무대를 선보였다. 「듬뿍, 담뿍! 학습으로 행복한 요기는 교육도시 생거진천」이라는 주제로 펼치는 축제의 장에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였다.
‘진천군 학습동아리’ 밴드에 시니어모델 양성과정 모집 안내문이 떴다. 모집 대상은 60세 이상 15명이다. 우석대학교 패션스타일링학과와 함께 한다고 하니 살짝 구미가 당겼다. 얼굴과 키, 몸매까지, 자신 있는 구석이 하나도 없지만 선착순 모집이라는 유혹에 덜컥 휴대폰 버튼을 눌러버렸다. 20대 젊은 시절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던 패션모델이다. 6호선 7번 출구를 달리는 지금, 몸의 균형을 잡는다는 핑계로 도전을 시도한 것이다. 연륜만큼 마음에 파워가 생긴 모양이다. 나의 망설임을 비웃기라도 하듯, 3일 만에 15명 모집에 16명의 모델 후보자가 등록을 하여 조기 마감을 했다. 평균 연령이 72.4세라고 한다. 기간은 1달 정도로 단기 교육이다. 9월 14일부터 10월7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에 3시간씩 5회다. 축제 당일을 빼면 워킹 연습은 단 4회 뿐이다.

패션모델, 그것도 시니어모델이 패션으로 모든 것을 커버해야한다는 생각을 깨고 각자 자신이 입던 옷을 입어야 한단다. 모두 3회에 걸쳐 해야 하는 런웨이 워킹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다. 구두와 스카프, 선글라스까지 챙겼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겁다. 나이를 감출 수 없는 몸매에 평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라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워킹 연습을 하면서도 잘 할 수 있을까? 자꾸만 물음표가 그려졌다.
진천군립도서관 대강의실에서 열린 첫 수업에는 바른 자세 잡기를 위한 ‘5분 벽 서기’였다. 16명의 모델 후보들이 여기저기 강의실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말은 쉽지만 최소 60년 이상 굳은 몸이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서 있어도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아 비틀거렸다. 교수님은 매일 집에서 5분 벽서기 연습을 하라며 숙제를 내 주었다. 둘째 날은 워킹 연습이었다. 강의실 바닥에 청테이프로 선을 긋고 여자는 1자 걸음, 남자는 11자 걸음 연습을 했다. 셋째 날은 전문 강사인 현직 모델을 모시고 포즈와 턴을 배웠다. 그녀는 늘씬한 몸매에 바른 걸음이 얼마나 멋있는지를 보여준다. 몸매는 따라주지 않지만 나도 곧 멋진 워킹을 하게 될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넷째 날은 축제 현장 무대에서 리허설을 했다. 무대에 오르내리기를 서너 시간, 돌고 또 돌았다. 워킹을 하다가 포즈를 취해야 하는 구간을 잊어버리는 일이 잦으니 무한 반복 연습이다. 현직 모델이 와서 가르쳐준 워킹과 포즈가 그때는 쉬워 보였는데 우리에겐 무리였나 보다. 결국, 축제 당일에도 한번 리허설을 했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무대로 올랐다. 관중석 가운데에 깔려 있는 레드카펫을 가로질러 성큼성큼 워킹을 했다. 박수와 환호성 소리에 어깨가 들썩이며 힘이 솟았다.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탔다. 즉흥적으로 춤을 추거나 손을 흔드는 이도 있다. 피날레로 박수를 치며 상쾌하게 워킹을 마쳤다. 관중과 하나가 되어 그저 즐기면 되는 거였다.
먼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시니어모델이란 이름표를 드디어 달았다. 전문가가 된 것도 아니요, 그저 아마추어지만 무언가 큰일을 해낸 것 같다. 열정만큼은 젊은이 못지않다고 외치듯 우리의 기량을 뽐낸 하루였다. 평생학습 축제에 시니어모델이 오프닝을 함으로써 평생을 배워도 배움은 끝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 뿌듯했다.
첫 걸음을 뗀 지 2개월 만에, 생거진천종합사회복지관 소극장에서 ‘들국화축제’ 개막식 오프닝 패션쇼를 했다. 들국화축제는 진천군 노인복지관의 사회교육 프로그램인 들국화교실 수강생들이, 1년 동안 배우고 익힌 과목을 시연하고 전시하는 발표회다. 시니어들의 축제인 들국화축제 개막식에 오프닝으로 패션쇼를 한 것은, 잔치에 흥을 돋우는 역할이다. 진천군 평생학습과와 우석대학교 패션스타일링학과가 협력하여 빚어낸 시니어모델의 탄생은, 이렇게 흥겨운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노년의 꿈을 펼치는 아마추어지만 점점 경력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