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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해교육의 현대적 의미

칼럼

문해교육의 현대적 의미

언어는 자연적으로 발생했지만 문자는 발명되었다. 문자의 발명은 인류사에서 혁명적 사건이다. 문자가 만들어지면서 인류는 상거래(경제), 법과 행정(정치), 신화와 역사(서사시) 등 세 분야에서 획기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이른바 양자 도약(quantum leap)에 비견할 만하다. 특히 문자로 신화와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신화와 역사는 한 인간 집단이 공유하는 경험으로 집단정체성의 뿌리이다. 문자 시대 이전에 인간 집단은 구전으로 경험을 공유했다. 구전의 도달거리와 지속시간은 짧다. 집단의 규모가 일정 규모 이상 커지기 어렵다. 문자가 없으면 소규모 씨족 집단으로 존립할 수밖에 없다. 문자를 발명하거나 또는 빌려서라도 신화와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씨족집단은 부족으로 통합되고, 부족국가를 거쳐 일부는 제국으로 발전했다.

기원전 3500년 경 설형문자를 발명한 수메르인들은 ‘길가메시 서사시’로 상징되는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으며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지배했다. 그리스문자와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페니키아 문자를 발명한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했고, 로마제국 이전 지중해의 최강국이었던 카르타고를 북아프리카 땅에 건설했다.

그러나 문자의 혜택을 누구나 동등하게 누린 것은 아니다. 문자는 한 사회 지배계층의 전유물이었다. 문해력은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권력으로부터 소외시킨 채 특권을 누리는 수단이었다. 제국 출현 후 제국의 문자는 속주들을 통치하는 수단이 되었다. 로마의 라틴문자는 로마법과 행정문서의 형태로 속주에 전달되었고, 역사와 신화를 기록해 로마의 영광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다. 동로마제국에서는 그리스어가, 중국과 동아시아에서는 한자가 같은 역할을 했다. 문자는 피지배 속주의 민중들의 삶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서로마제국이 무너진 후 실질적으로 권력을 승계한 로마 교회도 라틴어와 라틴문자의 성채를 굳게 유지했다. 사제들의 권력은 라틴어 문해력에서 나왔다. 소수의 특권층을 제외한 대다수 신자들은 라틴어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마치 근대 이전 우리나라에서 대다수 불교신자들이 한자 불경을 읽지 못하고 오직 승려들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같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제들의 문자특권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루터는 라틴어 성경을 본인이 살던 지역의 토착어이자 일상 언어인 독일어로 번역하였고, 때마침 이루어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혁명에 힘입어 독일어 성경이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문해자가 급증했다. 독일어 문해자의 증가는 연쇄적으로 더 많은 독일어 콘텐츠를 요구했고, 괴테 등 독일어와 독일문자로 글을 쓰는 뛰어난 문인들의 등장했으며, 다시 문해자가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교황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왕과 영주들도 이런 흐름에 동조했다.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독일어와 비슷한 위치의 다른 언어들도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런 점에서 서구의 근대는 문자 독점의 해체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것은 지배계층의 문자독점을 해체하는 시도였다. 사대부들이 그토록 반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훈민정음을 궁중과 국가의 공식문자로 채택하지 않았다. 여전히 거의 모든 국가기록들, 예를 들어 왕조실록, <경국대전> 등의 법전, 행정문서 등은 모두 한문으로 작성되었다. 훈민정음은 언문이라는 멸칭처럼 보조적 문자였을 뿐이다. 보편적 교육기관도 없었다. 문해자의 증가는 제한적이었다. 구한말에서 일제 초기에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문해율은 30% 전후에 머물렀다. 물론 동 시기 중국이나 인도는 1,000명 가운데 1명만이 글을 읽을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적지 않은 수치이긴 하다.

따라서 문해교육은 기본적으로 평등지향적이다. 역사는 문자가 소수 지배층의 독점물이었지만 결국 다수 대중이 누리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여러 민족이 토착어인 일상 언어와 문자에 주권을 부여하면서 라틴어나 한자처럼 특정 문자로 제국을 유지하는 문자제국주의를 퇴치했음을 알려준다. 유럽의 여러 나라와 동아시아의 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그랬다. 문해교육은 또한 민주주의 발전과정과 흐름이 유사하다. 민주주의 역사는 재산과 교양을 갖춘 소수 남성에 제한되었던 투표권이 점차 일반 국민, 노동자, 여성, 소수자에게 확산된 과정이다. 문해도 같은 길을 걸어왔다.

유네스코(UNESCO)는 문해를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과 출판물을 사용하여 정의, 이해, 해석, 창작, 의사소통, 계산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한다. 다른 말로 옮기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올바로 이해하고 적응하며, 이웃과 소통하는 수단이자 창구이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화사회를 넘어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모든 기술이 하나로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면서 우리의 삶은 말할 수 없이 복잡해졌다. 활자화된 글과 출판물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 가운데 지극히 작은 부분이 되었다.

유튜브에서 가짜뉴스를 가려내지 못하면 선동만 당하는 우민이 된다. 스마트폰을 다루지 못하면 통화보다 문자와 이모티콘을 더 선호하는 손주들과 소통하기 어렵다. 예전에는 글을 모르면 차림표를 읽지 못해 음식을 주문하지 못했지만 요즘에는 키오스크를 사용할 줄 모르면 음식을 주문하지 못한다. 과거에는 인터넷 검색하는 걸 모르면 정보에 뒤쳐졌지만 지금은 챗GPT라 불리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다룰 줄 모르면 더 크게 뒤쳐진다. 소통이 단절되고 또 다른 소외와 차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문해교육은 평생교육에서 단지 중요한 영역일 뿐 아니라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교육이 시대의 변화에 맞춰 우리 스스로 변해야 하고 평생 학습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처럼 문해교육이야말로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확인하듯 문해교육은 평등지향적이다. 마르틴 루터와 세종이 문자독점의 해체에 앞장섰듯이 현대의 문해교육은 새로운 소외와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초 문해교육을 넘어서 외연을 혁명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충북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 윤 석 규